Search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②변재원 “탈시설과 장애인 학습권을 위해 깃발을 들겠습니다” - 경향신문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②변재원 “탈시설과 장애인 학습권을 위해 깃발을 들겠습니다” - 경향신문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②변재원 “탈시설과 장애인 학습권을 위해 깃발을 들겠습니다”

#나는나의깃발을들겠습니다 #서초동도광화문도아닌

#내가장애인야학이다 #내가장애인이다

고은영님(“하루하루 버티는 이들 옆에서 깃발을 들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나는 지금 혜화에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이곳 혜화에 오기 위해 2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사당역을 지나왔습니다. 4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지점에는 출근 시간만큼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해지기 전 오후 무렵, 애매한 이 시간에 2호선 환승 구간이 이렇게 붐비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오늘 서초역 집회를 위해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이 인파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정된 집회와 정반대인 강북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토요일(5일) 오늘 이곳 혜화에는 노들 장애인 야학 탈시설 기원 잔치가 열렸습니다. 1993년, 광진구, 어느 모퉁이에서 시작된 장애인 야학 노란들판은 이제 26살이 되었습니다. 지난 약 30년 동안 국가가 책임지지 않아 교육의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야만 했던 장애인은 삼삼오오 이곳 장애인 야학교실에 모여 교실을 이루고 학교를 세우고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를 구성했습니다. 탁구대가 놓인 빈 공간 한켠에서 공부를 시작한 수많은 장애인 학생들은 몇평짜리 좁고 허름한 교실에서 자신을 깨닫고, 사회를 배웠습니다. 새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자신만의 우주를 개척해나갔습니다. 장애인 학생 모두 농부가 되어 자신의 씨앗을 심고 대지를 경작하여 새로이 땅을 일구었습니다. 소중한 하나하나의 씨앗이 천천히 숨을 트고, 저마다의 줄기가 뻗고, 형형색색 저마다의 열매를 맺어 알록달록 노란 들판을 펼쳤습니다.

장애인이 야학에 가야만 겨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과거 26년 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19년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비참한 현실입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학습환경은 불안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수많은 지자체가 특수학교의 건립을 망설이며 공교육의 책임을 방관하는 동안, 수많은 장애인은 아직도 학교에 가지 못해 갈 곳 없이 방 한켠에 갇혀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성장하여 저마다 쌓아 올린 학벌과 논문의 수준에 대해 논의할 때, 장애인인 우리는 아직도 교실과 급식을 꿈꾸고 있습니다. 쫓겨날 걱정 없는 교실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고기반찬 나오는 급식을 먹고, 영어 간판으로 쓰여있는 카페에 가서 자신 있게 ‘카페라떼’를 주문할 수 있도록 알파벳을 배우고 싶은 학생의 꿈을 저마다 갖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야학) 앞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야학 인근 도로는 장애인이 자주 오가는 지역이지만 장애인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탁지영 기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학(야학) 앞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야학 인근 도로는 장애인이 자주 오가는 지역이지만 장애인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탁지영 기자

야학뿐만 아니라, 운이 좋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장애인 학생들 또한 여전히 배제와 차별이 존재하는 학습 환경 속에서 수학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고등학교를 끝까지 다닐 수 없었던 저는 자퇴하여 검정고시를 응시하고 대학에 진학해야만 했습니다. 겨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하고 싶은 공부를 자유로이 할 수 없었습니다. 오래된 단과대학 4층에서 수업이 열린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가 없어 수강을 포기해야만 했고, 장애인 학생이라는 이유로 교내 체육관으로부터 이용을 거절당하고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도우미가 없으면 급식을 먹기가 어렵고, 무거운 문을 열어 학교시설을 오가기도 어렵습니다. 또래들처럼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없었고, 또래들처럼 운동하고 싶어도 운동할 수 없었습니다. 또래들처럼 밥도 먹을 수 없었고, 학교를 자유로이 오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비장애인 학생들이 학습의 공간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동안, 장애인 학생들은 당장 학교로부터 배제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왔습니다.

학습의 장에 겨우 한발을 걸친 장애인이나, 학습 공간으로부터 배제된 장애인이나 우리는 모두 주변인의 자격으로 위태롭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장애인은 고차원적인 평등을 꿈꾸기 전에, 당장 세상 밖으로 쫓겨나지 않기 위한 꿈을 꾸며 각자 불안정한 교실 속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거대 집회가 열리는 지금 이 시점에 장애인의 학습 공간을 이야기하는 우리의 투쟁이 더 중요하다거나 덜 시급하다고 비교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의 시민이 각자의 이유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광화문의 집회와 서초동의 집회에 참여하는 만큼, 장애인인 우리에게는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장애인 야학 탈시설 잔치가 소중한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교실을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장애인 차별을 곱씹고 감내하며 살아가더라도, 교육받을 권리 단 하나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만남의 장을 포기할 수 없고, 영어를 배우고 수학을 배우고 인권을 배우는 학습의 장을 포기할 수 없고,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급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1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장애인 예산 확충과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김정근 선임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1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장애인 예산 확충과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하며 행진하고 있다./김정근 선임기자

장애인의 교실은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불안합니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거대 정쟁에 비하면, 누군가에게 장애인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어느 장애인 야학의 탈시설 잔치는 다소 조촐하고 초라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 가치를 증명하고 투쟁해야만 우리의 교실을 지켜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조촐한 탈시설 잔치를 개최하는 것을 결코 망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회에 우리가 살아있음을 보여줄 겁니다. 학교로부터 배제된 장애인들 모두 여기 장애인 야학에 모여 공부하고 있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우리는 장애인 야학 탈시설 잔치를 통해 학예회를 열 것이고, 노래를 부를 것이고, 자신 있게 영어 가사로 쓰인 팝송도 부를 것입니다. “장애인이 세상을 향해 이제 나간다. 나, 간다!”고 외칠 것입니다.

나는 나의 장애인 동료들이 탈시설하고 나와 이룬 소중한 장애인 야학 교실을 지키기 위해 광화문도, 서초동도 아닌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깃발을 들겠습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공부를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 동지들 곁에 남아 교실을 지킬 것입니다.

서랑님, 당신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조국 정국은 ‘두 개의 광장’을 열었다. 서초동에 모인 이들은 검찰개혁과 조국 법무부 장관 지지를, 광화문으로 간 이들은 조 장관 사퇴와 문재인 정부 반대를 외쳤다.

두 쪽으로 갈라진 것처럼 보이는 광장에 ‘사이’가 존재한다. 두 광장 사이에는 주목받지 못한 다양한 불평등, 목소리를 얻지 못한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서초동에도 광화문에도 쉽사리 발길을 향할 수 없었다는 10명의 청년들은 “나는 나의 깃발을 들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안자들은 “세상이 다시 납작해졌다. 오직 두 갈래만 존재하는 것처럼 쪼개졌지만 그 사이 어디에도 포함될 수 없는 수많은 섬들이 존재한다”며 “우리 각자를 향해 안녕의 당부를 담은 편지를 보내자”고 했다.

한 명이 “장애인 야학 교실을 지키기 위해 광화문도, 서초동도 아닌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깃발을 들겠다”고 하면, 다음 사람이 “나는 서초동도 광화문도 아닌 자매들 속에 있다. 나는 여기서 나의 깃발을 들겠습니다”고 여성 정치를 말했다. 누구는 밀양의 깃발을, 다른 사람은 성소수자의 깃발을, 지역의 깃발을, 환경의 깃발을 들었다.

모든 글에는 ‘#나는나의깃발을들겠습니다’ ‘#서초동도광화문도아닌’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경향신문은 10명의 청년들과 함께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에서 고민한 이야기 10편을 6·7일 연재한다.



2019-10-06 06:59:00Z
https://news.google.com/__i/rss/rd/articles/CBMiSGh0dHA6Ly9uZXdzLmtoYW4uY28ua3Iva2hfbmV3cy9raGFuX2FydF92aWV3Lmh0bWw_YXJ0X2lkPTIwMTkxMDA2MTU1OTAwMdIBRmh0dHA6Ly9tLmtoYW4uY28ua3IvYW1wL3ZpZXcuaHRtbD9hcnRfaWQ9MjAxOTEwMDYxNTU5MDAxJnNlY19pZD05NDAxMDA?oc=5

다음 읽기 >>>>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서초동과 광화문 사이]②변재원 “탈시설과 장애인 학습권을 위해 깃발을 들겠습니다” - 경향신문"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