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로 난민 온 헤가지가 시위 중이다. [출처: https://ift.tt/37ytcqq] |
“이집트는 사라 헤가지를 저버렸다”
지난 6월, 성소수자 운동가 사라 헤가지(Sarah Hegazi)가 30살의 나이로 망명지 캐나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17년 9월 22일 카이로에서 열린 레바논 출신 인디밴드의 콘서트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 사건으로 투옥된 그는 석방 후 “성적 일탈을 부추긴다”는 비난에 시달리다 이집트를 떠났다. 2018년 그가 블로그에 발표한 글에 따르면 3개월의 구금 기간 중 전기고문이나 심리적인 고문도 당했다고 했다.(1)
이집트에서 동성애는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성매매방지법을 근거로 처벌될 수 있다. 그리고 아랍의 봄 혁명세력을 누르고 집권한 군부 출신 엘 시시 정권에서 성소수자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집트 인권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92명의 성소수자가 체포됐다. SNS에 헤가지의 사진이 올라왔을 때 처음에는 성소수자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곧 대중의 히스테리 현상이 이어졌고 혐오발언과 그를 체포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졌다. 그런 뒤 정부는 헤가지 등 성소수자들을 투옥했다. 캐나다로 망명하고 2년이 지난 후 헤가지는 다음과 같은 용서의 말들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형제자매들에게, 나는 이곳에서 구원을 받고 싶었지만 실패했어. 나를 용서해줘. 내 친구들에게, 여행은 잔인했고 그것을 견디기에는 내가 너무 약해. 나를 용서해줘. 세상에게, 당신은 무서울 정도로 잔인했어. 그러나 용서할게.”(2)
▲ 베이루트 이집트 대사관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헤가지를 추모하고 있다. [출처: https://ift.tt/37ytcqq] |
종교와 종족 중심의 소수자 논의
중동의 소수자 이슈는, 종교나 종족적 소수자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와 함께 여성 이슈는 늘 이슬람과 연관 지어 강조된다. 이러한 논의 구도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어져온 서구의 지배전략이 반영된 것이다. 즉, 종족이나 종파의 문제는 아랍·이슬람 사회가 지닌 통합의 한계를 입증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또 기독교 소수집단의 문제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입의 명분으로, 여성의 열악한 지위는 이슬람 사회를 비하하는 목적으로 이용됐다.
이는 물론 종교와 종족의 다양성이 크고 소수집단이 차별받는 이 지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동 인구의 대부분은 수니파와 시아파에 속하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랍인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종교적인 소수집단으로 콥트교, 그리스 정교, 그리스 가톨릭, 마론파, 라틴족 개신교 등 기독교 교파, 그리고 시아파, 알라위, 드루즈 등 이슬람의 소수집단이 있다. 종교보다 더 다양성이 심한 종족적 소수집단에는 쿠르드인, 체르케스인, 투르크멘인 등 비아랍 수니파, 그리고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남수단의 기독교도와 애니미즘 신자와 같이 비아랍이자 비이슬람에 해당하는 집단 등이 있다.(3)
한편 여성의 경우 사회적인 측면에서 차별과 제약이 심하며, 여성의 고용률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낮다. 이러한 중동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여성은 소수자, 차별, 증오에 관한 논의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중동의 소수자 관련 이슈 중에는 히잡이나 명예살인 등 여성 관련 이슈가 두드러진다. 최근에는 2017∼2019년 이란에서 진행된 히잡 착용 의무화 반대시위가 주목을 받았다. ‘엔 할라브가의 소녀로 알려진 이란 여성 비다 모바헤드(Vida Movahed)가 시위 현장에서 히잡을 막대기에 묶어 깃발처럼 흔들었고. 이 행위로 체포된 것이 발단이 됐다.(4) 문제는 이러한 논의 구도가 일반적으로 소수자 논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성소수자, 이주민 문제를 은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은폐된 소수자들
중동에서 성소수자와 이주민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지만, 이곳도 다른 지역처럼 성소수자들이 존재하고 이들을 향한 혐오 현상도 심각하다. 중동은 석유가 주요 자원이 된 1960년대 이후부터 유럽과 미국 못지않게 많은 이주민이 이주한 지역이기도 하다.
먼저 성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자. 중동 지역은 근대 초까지만 해도 유럽에 비해 동성애의 제약이 적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를 보면 절반 정도의 중동 국가에서 동성애가 불법이며 심지어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레이트연합에서는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종교에 따른 차이도 찾기 힘들다. 수니파 무슬림이나 콥트교, 마론파는 명확히 동성애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일반인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 구성원 중 동성애자가 있을 경우 명예살인을 통해 가족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 지난해 2월, 21세의 알제리 의대생이 증오범죄로 추정되는 범행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가 사망한 채 발견된 기숙사 벽에는 그의 피로 쓰인 “그는 게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정부나 언론은 사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스라엘은 이 분야에 있어 가장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성커플의 동거나 성전환이 허용되고 있으며, 아직 합법화되지는 않았지만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팔레스타인 성소수자들은 동성애 혐오와 팔레스타인인들을 혐오하는 인종주의를 함께 겪고 있다. 최근에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이자, 참깨 소스 ‘타히니’ 제조업체 알 아르즈(Al Arz)의 소유주 쥴리아 자헤르(Julia Zaher)가 이스라엘 성소수자 단체에 기부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회사가 보이콧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7월 1일 이 단체가 트위터에 그녀의 기부에 감사를 표한 직후 ‘타히니 전쟁’이라 불리게 된 논쟁이 벌어졌다.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이 회사 제품들을 매대에서 빼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5) 이 사건은 그동안 관심 밖에 있거나 금기시됐던 성소수자 문제를 공론화한 측면도 있다. 전 세계에 파견돼 있는 10여 명의 이스라엘 외교관들이 알 아르즈를 지지하는 의미로 699파운드의 타히니 소스를 구매하기도 했다.(6)
이주민 문제 역시 중동의 보이지 않는 그늘 중 하나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이주노동자 왕래가 가장 잦은 지역이기도 하다. 걸프만 산유국들은 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를 많이 받아들이고, 주로 이곳을 떠나는 북아프리카 이주민들은 유럽 지역을 택한다.
중동 지역의 이주민은 크게 노동이주민과 난민으로 구성된다. 걸프만 산유국의 경우 이주민 비중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이들이 이 지역의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다. 반면 전체 인구의 30∼40%가 이주민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의 경우에는 난민과 그 후손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가 하면 터키나 이란과 같이 전통적으로 이주민의 비율이 낮은 나라들도 있다. 물론 터키는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난민이 많이 들어오면서 이주민의 비율이 다소 늘어났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는 건설, 가사노동, 소매업 등 민간부문에 종사하며, 임금이 낮고 열악한 조건에서 일한다.
이들은 ‘카팔라’라 불리는 후견인 제도로 인해 고용주 개인에게 철저히 예속돼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기가 어렵다. 심지어 해당 국가를 떠나고자 할 때도 고용주의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다.
중동 지역 이주민들이 흔히 겪는 추방 조치는 불황기 대응 방안으로 활용된다. 알제리에서는 매년 수천 명의 사하라 이남 출신 이주민들이 강제추방되고 있다. 2014년 1340명에서 2017년 9300명으로 늘어났고 가장 상황이 안 좋았던 2018년에는 2만6천명이 추방됐다. 이들 중 40% 정도가 사하라 사막에 버려졌다고 한다. “우리는 버스에 실렸고 음식이 제공되지 않고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진 상태로 사하라 사막에서 30km를 걸은 후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알제리에 인접한) 니제르 북부 도시 아가데즈에 도착했다.” 말리, 감비아, 기니, 아이보리코스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추방됐다.(7)
코로나 시대의 버려진 소수자
소수자가 특히 재난 상황에 취약하다는 점을 입증하듯,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배제와 추방에 처한 국내외 소수자들의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재난으로 인한 불안감과 피해로 다른 집단을 배려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심지어 재난을 소수자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중동 난민과 이주노동자들의 어려움은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걸프만 산유국들은 이주노동자의 해고와 추방이라는 고전적인 방법을 다시 사용했고, 방역대책이 초래한 사회적 고립 현상이 일반 국민보다 난민, 이주민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원유 생산이 감소하고 자국민 취업 확대를 위해 외국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가 시행되면서, 이미 코로나 사태 이전에 2백만 명 정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중동 산유국을 떠났다. 코로나19 사태의 추이를 고려하면 당분간 이러한 경향이 사라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세계은행은 올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보내는 송금 규모가 20%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8)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체 주민의 70%를 차지하는 쿠웨이트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우리도 힘든데 왜 외국인을 도와줘야하냐는 반발이었다. 특히 조건이 좋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놓고 쿠웨이트인들과 경쟁하고 있는 이집트인들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코로나 사태로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를 축소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웨이트 정부는 이주 노동자의 일자리 또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16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점차 쿠웨이트인으로 대체하고 12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15만 명의 미숙련노동자 등 37만 명을 해고한다는 내용이었다.(9)
성소수자들 역시 코로나19에 따른 고립과 격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동제한 조치로 가족과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동성애를 반대하는 가족들로부터 시달림을 받게 된 것이다. 에이즈 환자의 경우 집에서 나올 수 없고 이 때문에 치료 공백이 생겨 더욱 위험한 상황이다.
우리와 닮은 중동
보편적인 중동의 모습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동의 소수자 상황은 다른 지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사한 편견, 유사한 차별과 폭력, 그리고 유사한 사건들을 일어나고 있다. 우리와 닮은, 비교 가능한 점에 주목하게 되면 이질적으로만 보였던 중동 사회와의 교류 채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중동에서도 다양한 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랍의 봄 이후 사회가 더 파편화됨에 따라 보다 통일적이고 동질적인 사회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그로 인해 소수자 논의도 개인의 권리보다 집단 간 관계를 중시하는 기존 경향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집단의 권리 신장 및 통합의 방안으로는 오스만 제국 시절 적용됐던 밀레트 제도의 미덕이 자주 언급된다. 소수집단의 정치적, 문화적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제 성소수자나 이주민에게도 이 미덕이 적용돼야 할 때가 됐다. 새로운 공존의 기제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자유를 외쳤던 아랍의 봄의 동력과 연관 지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https://ift.tt/37yEYAU, 2020년 8월 12일 검색.
(2) https://ift.tt/2B8iWJE, 2020년 8월 10일 검색.
(3) P. R. Kumaraswamy, 2003, “Problems of Studying Minorities in the Middle East”,
Alternatives: Turkish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Vol.2, No.2, Summer 2003: p.244
(4) https://ift.tt/32PJlae, 2020년 8월 12일 검색.
(5) https://ift.tt/30aVP9D, 2020년 8월 12일 검색.
(6) https://ift.tt/35SLmnP, 2020년 8월 12일 검색.
(7) https://ift.tt/3hPVakI, 2020년 8월 20일 검색.
(8) https://ift.tt/3hEkmLx, 2020년 8월 12일 검색.
(9) https://www.middleeastmonitor.com/20200811-kuwait-readies-to-expel-370000-foreign-workers/,2020년 8월 20일 검색.
September 21, 2020 at 06:5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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